2022 도전일지/올리브영 MATE

올리브영 메이트에 지원하다

티포레 2022. 1. 17. 00:02

2022년 1월 16일. 

 

세상에, 정녕 내가 지금 제대로 본 게 맞단 말인가. 2021-2학기를 맞이하며 바쁜 학기를 보낸 게 엊그제 같고, 종강하고 매일같이 미래 고민을 하며 이것저것 알아보고 도전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1월의 절반이나 지나갔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던데 정말이다. 해야 하는 건 많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내고 제대로 해내는 것까지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내 몫이다. 그렇기에 성인의 시간은 미성년과 비교할 수 없이 빨리 흐르는 것 같다. 

 

나의 20대는 찬란한 일상으로 가득할 줄 알았다. 어렸을 적 꿈꾸던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20대 중반이 되어서도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고 내가 쌓아 논 능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만 같았다. 10대일 때는 10대 때만 치열하게 살면 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20대 때는 이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치열함을 수행해야 했다. 20대 초까지만 해도 이 치열함이 지긋지긋해서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았다. 덕분에 남들은 몇 번이나 이별과 아픔을 겪으며 만나는 인생의 동반자를 이른 나이에 만날 수 있긴 했다. 경쟁이 아닌 다른 공부를 하고 또 부딪히며 여러 가지를 깨달아갔다. 경쟁이지만 내가 선택한 경쟁만을 하면 되는 삶. 내가 듣고 싶었던 과목, 내가 하고 싶었던 대외활동. 그렇게 알아가는 게 행복했다. 달콤했다. 그런데 이 달콤함에 너무 젖었나 보다. 안일하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면 언젠가 길이 보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대가를 20대 중반인 지금 처절하게 받고 있다. 

 

위기감. 

대학에 와서는 느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취뽀가 어렵다고 할지라도 나와는 다른 세계의 얘기일 줄 알았다. 그러나 참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멍청한 생각이었다.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은 자에게 어찌 편안한 길이 열리겠는가. 이런 직무, 저런 직무에 관련된 활동을 해보지 않고 어떻게 평생의 업을 단숨에 정할 수 있겠는가. 이걸 몰랐던 어린 날의 나는 하고 싶은 활동만 하면서 살다보면 언젠가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덕분에 고학번이 된 나는 저학년일 때 누렸던 행복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사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아무것도 한 게 아니긴 하다. 오히려 인생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게 되었다. 인간관계라던지, 삶에서 중요한 가치관이라던지,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저학년 때의 활동이 없었더라면 얻지 못했을 소중한 가치들이다. 그런데 나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칠 직업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조차 벅차다는 이유로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에는 당시에 안고 있는 고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확실히 벅찬 일이었으나 그때부터 했어야 하는데라는 후회가 들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다. 

 

결국 2021-2학기에 20학점을 수강하며 진로 고민도 병행했다.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으면서도 정작 취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고민은 깊게 해오지 않았던 나는 직무 선정부터 쉽지가 않았다. 넓고 얕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이 제일 힘들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게 다 좋은데, 세상은 specialist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넓고 얕은 관심사를 갖고 있던 나는 노동 시장에서 메리트가 있는 상품이 아니었다. 

 

직무를 알아가고 나에 대한 분석도 병행하며 영어 성적과 대외활동 같은 스펙도 쌓고자 아등바등했다. 한번에 여러 가지를 하려니 학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 스트레스였다. 다른 사람의 취뽀 후기를 읽어갈수록 인적성과 면접에 대한 압박부터 다가와 심장이 뻐근했다. 숨 쉬는 것도 힘들고 매일 불안함에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데도 짓누르는 건 스트레스뿐이어서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늦게 시작하고 이미 늦어버린 나이를 가진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매일이 불안이고 부담이고 스트레스였다. 하루가 절실하고 아까운 상황에 아직도 직무를 제대로 선정하지 못해 답답했다. 남들은 1학년 때부터 완벽한 코스를 짜서 준비하고 역량을 키워가는 데 나는 제대로 한 게 없었다. 

 

그런데 남들이 1학년 때부터 완벽한 준비를 한다는 걸 떠올리니 과거의 내가 생각이 났다. 내 인생 가장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고등학교 시절. 생각해보니 그때도 나는 목표를 설정하고 1학년 때부터 철두철미하게 계산적으로 살았다. 목표 하나만을 가지고 그에 맞는 활동과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는 거의 내신 성적만 잘하면 돼서 혼자 할 수 있는 공부만 하면 됐다는 점에서 굉장히 나에게 유리했다. 그리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아.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과거의 나는 목표가 확실했고 그 목표를 위루기 위한 하위목표들을 체계적으로 설정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실행할 배경과 능력이 되었다. 그땐 자취하지 않아서 먹을 것과 생활비도 가족이 해결해주었고 공부도 내가 치열하게 시간을 쏟으면 되는 일이었기에 내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그렇지 않다. 함께 일하는 세상이고 조화로우면서도 나만의 특출난 브랜딩이 필요한 세상이다. 그런데도 이걸 뒤늦게야 깨닫고 준비하려니 힘든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에 내가 어째서 그렇게 늘 자신이 있었고, 죽을 만큼 힘들었음에도 보람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목표가 명확했고 하위목표도 명확했으며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 목표에 가까워진다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내 노력은 내가 잘 알기에 나를 믿을 수 있었다. 애초에 내신 등급이란 건 매 학기마다 눈으로 보이는 지표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번에도 다시금 내가 효능감과 유능감을 느꼈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한다. 방법은 좀 다르다. 그땐 하고 싶은 게 명확했기에 최종 목표를 정하고 그 하위 목표를 차례대로 정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아직은 분명치는 못하다. 그러나 2022년이 되기 이전에는 그저 안개가 자욱한 출구 없는 미로를 걷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할 수 있어 마음이 조금은 나아졌다. (물론 여전히 스펙이 부족하고 늦게 출발했다는 압박 때문에 마음이 완전히 편한 것은 아니다.)

 

일도 사랑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른 나이에 내게 잘맞는 사랑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 당장 소각처리해버려도 분이 안 풀릴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만나 고생한 뒤 사랑을 찾는 사람도 있고 가슴 아픈 이별을 한 뒤 사랑을 찾는 사람도 있다. 이른 나이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겠지. 이건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은 운이 좋았다고. 나는 인생의 동반자는 일찍 찾았지만 일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찾게 되었다.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방식들과는 다르게 이것저것 부딪히고 깨져보며 찾아야 될 것 같다. 

 

종강하고 열심히 알아보고 고민하며 시간이 많이 흘렀었다. 가만히 앉아서 고민한다고 무언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고민도 필요한데, 일단 어떤 일이라도 직접 부딪혀 봐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인턴을 하고 싶었는데 2022-1학기 개강을 생각하면 병행이 쉽지 않았다. 더더욱 방구석에서 시간만 날리는 것 같다는 압박이 온몸을 조여왔다. 그러다 1월 5일 교내 취업컨설팅을 진행했다. 당장 뭐라도 하라고. 나 같으면 올리브영 알바라도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알바. 좋다. 정말 좋지만, 사무직을 원하는 나랑 맞는 일일까? 이 일을 하는 게 의미있을까? 마음속에 이 길을 두고 있으면서도 고민이 되었다. 현재 MD, BM, 마케팅, 인사 등 여러 직무에서 고민 중인데(현직자가 보면 코웃음을 칠 거다. 안타까움에 한숨부터 쉴지도 모른다. 정말 너무나도 다른 일인데 고민도 안 하고 그냥 좋아 보이니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정말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업무라는 생각이 들어 선택지로 넣었다. 나도 전문적이고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고 싶으나, 정말 이 직무 선택부터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스펙을 쌓아야 된다는 압박감 속에서도 올리브영 알바는 사무직과 직접적 관련이 없고 무엇보다 알바라는 것이 큰 스펙이 되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기만 하던 중... 운명처럼 한 취업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후기를 올린 것을 보았다. 

 

사실 내가 지원한 올리브영에 예전부터 MATE를 구한다는 배너가 있긴 했었다. 그때는 내가 올리브영 MATE가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1월 5일 취업컨설팅 컨설턴트 분이 얘기해주신 게 마음에 계속 걸려 있었고, 취업 커뮤니티에 누군가 올린 후기까지 보니 이건 뭔가, 꼭 지원해야 하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알아보니 웬걸 올리브영은 알바부터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게 아닌가. 어떤 사람은 50대 1이었다고까지 말한다. 

 

후덜덜. 겁부터 난 건 사실이다. 나는 파워 외향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올리브영 알바는 결국 서비스직이고 셀링 업무가 주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내향 성향이 강한 나와는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시그널들이 계속 올리브영 알바를 말하고 있었고 알바몬에 들어가 검색을 해보니 왠지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리브영 알바 사전 질문을 위해 알아보면서 결국 생각도 바뀌게 되었다. 

 

사회생활은 대면 업무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직종이든 마찬가지다. 글 쓰는 일은 그게 아닌 것 같을지라도 한 번은 미팅을 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면 업무와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은 일조차도 어쩌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생길 텐데 다른 일은 얼마나 많겠는가. 결국 사람을 만나며 얘기 나누며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쌓는 건 반드시 필수적인 일인 것이다. 그래서 올리브영 알바에 더 큰 뜻을 품게 되었다. 지금 내가 취준에 자신감이 부족한 건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을 만나 사회생활하는 경험이 끊겼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이걸 해결하는 게 어떻게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처방을 내렸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면 능력을 개발하자.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아 두렵다면 작은 것부터 시도하자. 대기업이 너무 높아보인다면 날 뽑을 수밖에 없게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가자. 

 

그래서 지원했다. 2군데에 지원했는데 1군데는 오늘 보니 공고가 마감되었다. 즉 나는 서류에서부터 탈락한 것이다. 다른 한 곳은 오늘 전화가 왔다. 전화를 해주신 분부터 나와는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가진 말투와 톤이었다. 역시 서비스직 전문가는 다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겁만 먹지는 않기로 했다. 아직 안 해봐서 그렇지 한다면 잘 해낼 수 있을 테니까.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진 나니까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세상에 대해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혼자 할 수 있는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면 이제는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이다. 성인이 된 후의 공부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것이다. 인생 길다. 그리고 사람은 다양하다. 여러 사람이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 속에 잘 녹아들어 살 수 있도록 나는 또 다른 공부를 계속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올리브영 메이트에 도전했다. 잘할 수 있기를,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며.

 

 

 


 

올리브영에 지원하기까지 느꼈던 생각들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주저리주저리 의식의 흐름대로 쓰게 되어 급 결론에 도달해 이 블로그에 방문한 이가 있다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겠나. 지금 심리 상태로는 이렇게밖에 안 써진다. 

 

이렇게나 길게 올리브영 알바 지원에 도달하게 된 얘기를 썼는데 면접에서 떨어지면 웃기겠다. 그러나 그러지 않길 바라며 내일 열심히 준비해야지. 

 

그나저나 이 글의 주제는 뭘까.

 

다 쓰고 나니 새삼 내가 뭘 쓴 건지 의아해진다. 의아함을 몇 십분 가지다, 나름대로 세 줄 요약을 해보고자 한다. 

 


1. 20대의 내 인생은 찬란할 줄 알았는데 나는 명확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불안함과 압박감 속에서 2022년 1월의 절반이나 보냈다. 

2.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와 달리 목표가 분명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하위목표도 분명하지 못해 제대로 준비를 못했었다. 

3. 방식을 이번엔 좀 바꿔 밑에서부터 경험을 해가며 목표를 구체화시키는 방향으로 진로를 찾아보고자 하며

그 활동의 일환으로 운명처럼 다가온 올리브영 알바에 지원을 했다. 


 

흠. 이게 맞나 싶네.

 

어쨌든, 긍정적이고 밝은 나로, 다시금 나에 대한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나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하나는 분명하다. 이제 나의 길을 찾기 위해 하나하나 작은 것부터 해내가야지. 

 

사실 원래 티스토리의 첫글로 생각했던 다른 글감이 있었는데 올리브영에 밀렸다. 다음 주에 꼭 써야지. 쓰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지났다. 이번주에 꼭 써야지. ㅎㅎ

 

혹여나 블로그에 방문하신 분이 있다면 감사드린다. 앞으로의 일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란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으니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보자. 
-짐캐리-